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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

대통령보다 2만5200배 중요한 보직 있다?(한겨레)

 

관광객들이 청와대를 바라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한겨레 프리즘] 연대장과 대통령
청 대변인 “육참총장·경찰청장 1초도 비울 수 없는 자리”
누리꾼들 “대통령은 7시간 자리 비웠는데…, 그렇다면?”

“지금 연대장님 어디 계시나?”

배불뚝이 김아무개 인사과장(소령) 등 연대 간부들은 시도 때도 없이 내가 군 복무를 하던 통신대로 전화를 걸어 연대장의 행방을 물었다. “내가 연대장 마누라도 아닌데, 연대장 행방을 왜 내게 묻느냐”는 댓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당시 나는 “네. 알겠습니다. 확인 뒤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했다.

당시는 휴대전화도 삐삐도 없었지만 나는 늦어도 5분 안에 연대장이 어디 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먼저 연대장 집무실의 당번병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대장이 집무실에 없다면 연대장 관사 당번병에게 전화를 걸어 행방을 확인했다. 집무실과 관사에도 연대장이 없다면 정문 위병소에 전화를 했다. 위병 근무자에게 물으면 연대장 차량이 언제 부대 밖으로 나갔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추가로 수송대 배차계에 확인하면 연대장 차량의 외부 행선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20여년 전 군 복무 시절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논란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4월16일 오전 10시쯤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첫 서면보고를 받고 7시간이 지나서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다. 나의 군 복무 시절 연대장 찾기 경험에 비춰 보면, 청와대 부속실과 경호실에 몇가지 대목만 확인하면 박 대통령의 7시간의 동선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고 본다.

‘대통령의 7시간’ 논란의 진원지는 7월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모호한 답변이었다.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이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당시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 있었다”고 대답했다면, ‘대통령의 7시간’ 논란 자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기춘 비서실장은 4월16일 세월호 사고 당시 ‘대통령은 집무실에 계셨느냐’는 질문에 대해 “위치에 관해서는 나는 모릅니다”라고 대답했다.

세월호 승객 304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초대형 사고가 터졌는데, 대통령의 행방을 7시간가량 ‘모른다’는 비서실장의 답변을 놓고 ‘뭔가 곤란한 사정이 있으니까 대답을 회피했다’는 추측이 무성했다. 급기야 대통령의 행적을 둘러싼 <산케이신문>의 악의적 보도가 있자 청와대는 뒤늦게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경내라니,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었다는 것인지 여전히 찜찜하고 답답하다.

최근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7시간을 밝히라’는 요구에 대해 “(세월호) 진상조사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고, 세월호 참사를 통해 청와대를 무력화시키겠다는 정치적인 의도”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7시간은 이런 식으로 덮을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의 7시간 논란의 핵심은 국가 재난 상황에서 국가 최고통수권자의 지휘가 7시간 동안 사라졌거나 불투명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설명대로 세월호 사고 당시 국가 최고통수권자의 지휘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박 대통령이 4월16일 7시간 동안 받은 24차례의 서면·유선보고의 내용과 대통령 지시사항을 공개해야 한다.

 

 

지난 6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물러날 뜻을 밝힌 육군참모총장과 경찰청장 자리는 1초도 비워둘 수 없는 중요한 자리이므로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대통령은 이들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에 대해 누리꾼들은 “대통령은 7시간도 비울 수 있으니 육군참모총장과 경찰청장이 대통령보다 2만5200배 중요한 보직”이란 우스개를 온라인에 올렸다. 이걸 보고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nura@hani.co.kr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508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