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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컵라면 물 부어주면 3000만원? 황당 규제 왜 나왔나 보니…(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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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60㎡ 규모 PC방을 운영하는 김모씨(59). 그는 최근 정부가 앞장서서 황당한 규제를 푼다는 소식에 만감이 교차했다. 그 또한 PC방에서 컵라면에 물을 부어 판매하다가 최고 3000만원의 벌금을 물 뻔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수년 전 정부가 잔반 재사용을 없앤다는 취지로 식품위생법 위반 업소를 신고하는 사람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일명 식파라치 제도를 도입했는데 단골손님인 이모씨가 지난해 포상금을 노리고 그의 PC방에서 불법으로 컵라면을 끓여준다고 신고한 것.

김씨는 "해당 공무원은 PC방에서 컵라면을 끓여 팔려면 휴게음식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며 "영세한 PC방에서 어떻게 이런 허가까지 받고 컵라면을 파느냐"고 말했다.

그는 "컵라면을 공장에서 출고한 그대로만 손님들에게 내놓아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법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는 것인데 어차피 손님들이 물을 부어서 먹는 것을 업주가 서비스 차원에서 대신해 준 것인데 이 조차도 위법이라는 게 황당했을 뿐"이라고 했다. 김씨는 "PC방 주인에게는 매출을 좌우할 수 있는 민감한 문제인데 담당 공무원들은 현실을 모른 채 원칙대로만 하려고 해 원망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이 촌극은 올해 1월부터 자취를 감췄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PC방과 만화방에서도 라면 같은 음식물을 취급할 수 있게 시행규칙을 풀어줬기 때문이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 움직임이 본격화하며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주는 것 못지않게 잘못된 규제가 아예 발붙이지 못하도록 현실감 있는 정책 토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분명 떨어져 나왔는데 아직도 흔적이…'법 분리 시 정교한 작업 필요'="화장품을 팔려면 정신과 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화장품법도 그런 예다. 현재 화장품업계에서 상식처럼 통하는 이 규정은 화장품법이 과거 약사법에서 분리된 법이어서 가능했다. 약사법이 약을 다루는 약사에 관한 규정인만큼 정신과 진단서를 요구하는 등 엄격한 규정은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1999년 화장품법이 약사법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해당 조항은 고쳐지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화장품 제조·판매업자에게도 정신과 진단서를 요구하는 웃지 못할 규제가 탄생한 것이다.

식약처는 내달 중 화장품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해 이 조항을 없앨 방침이다. 그러나 화장품법 분리 당시 미리 신경을 썼더라면 15년간 화장품 업계를 황당하게 만든 이런 규제는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새 업종 생겼지만 법은…'업종변화 고려한 발 빠른 업데이트 중요'=여성들이 손톱 관리를 위해 많이 찾는 네일아트숍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네일아트숍을 차리려면 업주는 아무 연관도 없는 미용사 국가기술자격 면허를 받아야 했다.

1961년 미용사법(현행 공중위생관리법)이 생겼을 때만해도 네일 미용이라는 업종 이 없었기 때문이다. 2008년 피부관리업이 별도 업종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피부관리실 창업은 미용사와 관련이 없어졌지만 유독 네일아트만은 미용사 자격을 계속 필수 조건으로 뒀다. 이 때문에 네일아트숍을 차리려는 사람들은 미용실을 차리기 위해 따야하는 미용사 면허를 받아야 했다.

이 규제도 올 하반기부터 사라진다. 보건복지부가 미용업 세부업종으로 네일미용업을 따로 만들기 때문이다. 네일아트가 대중에게 인기를 끈 지 꼬박 10년만이다.

◇현실은 나는데 정책은 제자리…'현장감 있는 정책 필요'=떡 배달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도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며 생긴 규제로 꼽힌다. 동네 떡집에서 돌떡이나 잔치떡 등을 배달해주는 것은 상식으로 여기지만 이는 엄연한 불법이다.

식품위생법 상 즉석 판매제조 및 가공업자는 매장에서 만든 식품을 손님에게 파는 것만 허용하기 때문이다. 방앗간은 물론 떡집에서도 떡이나 참기름, 빻은 고춧가루 등을 배달하는 것은 엄연히 법을 어기는 것이다.

식품을 배달하다가 자칫 상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규제의 근거다. 합법적으로 배달을 허용받으려면 가공업이 아닌 제조업으로 업종을 변경해야 하는데 이 변경이 만만치 않다. 20개 넘는 허가기준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이 배달 금지 관련 시행규칙도 내달 말까지 바꿔 떡 배달이 합법적으로 가능하도록 한다.

업계 관계자는 "책상에 앉아 법조문 한 두 줄을 없애는 규제 완화보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규제를 푸는 것보다 그런 규제가 생기기전에 미리 막아줘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bluesky@mt.co.kr

머니투데이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4032611295519093&outlink=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