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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우주의 비밀 간직한 암흑물질 ‘윔프’, 그 흔적을 찾아라(경향신문)

강원 양양의 점봉산 지하 700m에 마련된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지하실험연구단 실험실에는 암흑물질을 탐지하는 세슘요오드 검출기가 설치돼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ㆍ점봉산 지하 700m서 ‘미스터리’ 규명에 도전한 지하실험연구단… “1년에 한두 번 미세한 반응, 그 순간 포착을 위해 CD 9만장 데이터와 싸워요”

우리 은하에는 태양과 같은 별이 2000억개가량 있다고 한다. 나아가 우주에는 적어도 수천억개의 은하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은 어떤 것일까.

과학자들은 우주의 96%가량이 ‘암흑물질(Dark Matter)’로 채워져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암흑물질은 보이지도 않고 다른 물질과 반응하지도 않는다. 인간이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존재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전 세계 과학자들이 암흑물질을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어떤 과학자도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다.

암흑물질을 통해 우주의 신비를 깨치는 작업에 한국인 과학자들이 도전하고 있다. 강원 양양 점봉산의 지하 700m 지점에는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에 나오는 ‘유럽 입자물리연구소(CERN)’처럼 신비에 싸인 곳이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지하실험연구단’의 실험공간 ‘Y2L’이 그곳이다.

■ 고 이휘소 박사가 처음 제안한 ‘윔프’

물리학자들은 이론적인 연구를 통해 윔프(WIMP·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s·약하게 상호 작용하는 무거운 입자), 액시온(AXION) 두 가지를 암흑물질 후보로 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윔프가 암흑물질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게 중론이다.

윔프는 한국의 전설적 입자물리학자인 이휘소 박사가 처음 아이디어를 냈다. 윔프는 우주에 널려 있고 지구도 관통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입자다. 초당 수억개의 윔프가 우리 머리 위로 쏟아진다. 그러나 다른 물질과 반응을 거의 하지 않아 흔적을 찾기 어렵다. 아주 일부가 1년에 1~2번 정도 원자핵과 미세한 반응을 일으켜 에너지를 방출한다. 그 미세한 반응을 잡아내는 것이 지하실험연구단의 목표이다.

지하실험연구단이지만 베이스캠프는 지상에 있었다. 이곳에는 연구단 소속 강운구 연구위원과 김봉희 기술원 2명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일주일에 2번 이상 베이스캠프와 떨어진 점봉산 인근 양수발전소 밑에 있는 지하실험실에서 암흑물질이 보내온 신호를 찾는다.

50㎡ 남짓한 지상 연구소 한쪽 벽에는 흰색 안전모 8개가 걸려 있었다. ‘암흑물질을 연구하는데 왜 안전모가 필요한가’라고 김봉희 기술원에게 물었다. 그는 “물리학 실험실에서는 주로 가운을 입지만 우리는 지하 깊은 곳에 들어가니 안전모는 필수”라고 말했다.

지하실험실이 있는 양수발전소는 베이스캠프에서 차로 3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양수발전소는 높은 저수지에서 낮은 저수지로 물을 떨어뜨려 발전을 한다. 전력이 남을 때 아래쪽 저수지 물을 위쪽으로 퍼올렸다가 전력이 필요할 때 이를 발전에 사용한다. 물을 끌어올리는 펌프를 지하에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양수발전소에는 지하 터널이 반드시 필요하다. 2㎞에 이르는 이 터널 끝에 지하 연구실이 있었다. 새로 지하를 뚫지 않고 양수발전소 시설을 활용한 것이다.

터널 입구에서 지하실험실까지는 차로 5분가량 걸렸다. 전파가 닿지 않아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았다. 지하 통로 환풍기 소음에다 기압차 때문에 귀가 먹먹하고 아팠다. 공기가 눅눅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 연구진이 자체 개발한 검출기로 연구

터널 끝에 다가가자 2층짜리 가건물로 지어진 연구실이 보였다. 1층에는 암흑물질을 검출하는 기기인 세슘요오드(CsI) 검출기가 있었다. 이 검출기는 연구단이 3년에 걸쳐 개발했다.

세슘요오드 검출기가 있는 실험실에는 검출기에 영향을 가장 적게 미치는 붉은색 등을 켜둔다. 복잡한 기계 장치가 설치된 벽면 뒤에 검출기가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검출기는 모두 12개의 투명한 크리스털(결정)로 구성돼 있는데, 크리스털에는 빛을 감지하는 센서가 붙어 있었다. 이 센서가 윔프와 원자핵이 반응할 때 발생하는 신호를 감지하는 것이다.

강 연구위원과 김 기술원은 2층에서 검출기가 감지한 신호를 컴퓨터로 분석하는 작업을 한다. 연구실에서 1시간가량 머문 뒤 통로로 나오자 속이 메슥거렸다. 환기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김 기술원은 “지하실험실에 내려오면 보통 5~6시간 정도 실험을 한다”면서 “공기가 너무 안 좋아 터널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악조건 속 지하 700m 지점까지 내려와 연구하는 이유는 ‘뮤온’이라는 우주입자를 최대한 피해야 암흑물질을 검출해내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세슘요오드화물 검출기는 뮤온에 민감하다. 지구 대기에서 생성된 뮤온이라는 입자는 지하 깊은 곳으로 갈수록 양이 줄어든다. 뮤온은 다른 물질과 반응해 중성자를 만드는데, 이 중성자가 세슘요오드물질과 반응해 내는 신호가 암흑물질 신호와 비슷해 연구에 혼동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 1초에 14개 신호 ‘모래사장 속 바늘 찾기’

현재 연구단은 암흑물질 후보인 윔프의 신호를 탐지했다고 주장하는 이탈리아 다마(DAMA)팀의 데이터를 재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다마는 2003년 검출기를 이용해 암흑물질 후보인 윔프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연구단은 다마의 연구결과 검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단은 고성능의 탐지기를 민감하게 만들어 실험을 재현했지만 아직 윔프를 찾지 못했다.

연구단은 이 과정을 2007년 물리학분야 유명 저널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에 게재해 주목을 받았다. 연구단은 2012년에도 민감도를 높인 검출기로 실험을 재현했지만 신호를 감지하지 못했다.

강 연구위원은 “세계 어느 나라의 연구진도 아직은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유가 있다. 윔프를 찾는 일은 ‘모래사장에 박힌 바늘 찾기’처럼 어렵다. 수많은 데이터의 ‘옥석’을 가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검출기가 컴퓨터로 보내오는 신호의 양은 1초에 14개다. 하루에 모아지는 데이터 용량을 계산하면 20GB(기가바이트)가량 된다. 1년이면 72TB(테라바이트)에 이른다. 800MB(메가바이트) 용량의 CD 9만장에 해당한다. 이중에서 윔프의 신호를 찾아내는 일이 연구의 핵심이다.

김 기술원은 “윔프를 찾기 위해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데이터와 씨름하고 있는 연구자들을 보면 안쓰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연구단은 강원 삼척 두타산 지하 1400m에 두 번째 지하 실험실을 지을 예정이다. 양양 지하 실험실보다 더 깊은 곳에서 암흑물질 찾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강 연구위원은 “수백m에 이르는 지하까지 내려가 암흑물질의 흔적을 찾는 일이 고될 때도 있지만 우주의 비밀을 내 손으로 파헤친다는 생각을 하면 피곤함이 이내 사라진다”고 말했다.

▲ 암흑물질 누가 먼저 찾아낼까

이탈리아 팀 2003년 ‘윔프 입자 포착’ 발표했지만 전 세계 연구진 회의적…

강운구 연구위원이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 가운데 96%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암흑물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지하실험연구단도 두 차례 의문 제기


과학계는 암흑물질 정체 규명이 2013년 노벨상을 받은 ‘힉스’ 입자 발견에 비견될 정도로 학문적 성과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암흑물질의 신호가 최종 확인된다면 우주대폭발(빅뱅) 이후 우주의 진화 과정과 우주의 미래 모습을 더욱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흑물질을 찾는 작업은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몇 년 동안 과학계에서는 암흑물질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윔프’ 입자의 흔적을 찾았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탈리아 암흑물질 연구팀인 다마(DAMA)는 1996년 요오드화나트륨 결정을 이용해 암흑물질을 검출하는 측정기구를 만들었다. 다마는 2003년 “7년간 실험 끝에 계절에 따라 측정값이 변하는 물질을 검출했다”며 “이것이 윔프 입자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다마의 연구결과에 과학계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에 근거지를 둔 다국적 암흑물질 연구팀 ‘제논(XENON)100’은 다마의 연구결과를 부정했다.

제논은 2011년 “액체 상태의 제논(Xe)을 이용해 2010년 1월부터 6월까지 암흑물질을 측정한 결과 신호를 검출하지 못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다마가 검출한 신호 범위에서 더욱 정밀하고 민감도 높게 재현 실험을 했으나 신호를 찾을 수 없었다고 반박한 것이다.

한국 지하실험연구단도 2007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이탈리아 다마의 연구결과를 검증했다. 그러나 다마가 찾았다고 발표한 신호를 포착하지 못했다.

김영덕 단장은 “현재로서는 어느 연구팀이 틀렸다거나 맞았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더욱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또 다른 암흑물질 연구팀인 ‘코젠트(CoGeNT)’는 이탈리아 다마의 실험을 일부 재현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신호가 아주 미약해 확신할 수는 없다고 했다.

코젠트는 2011년 5월5일 미국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2010년 1월부터 15개월간 윔프 신호를 관측한 결과 희미하지만 다마가 발견했다고 말한 ‘계절별 차이’를 일부 확인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국 연구진은 우주정거장에 설치된 암흑물질 탐지기 ‘AMS’에서 암흑물질 신호를 포착했다고 발표했다. AMS는 2011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 엔데버호에 의해 우주정거장으로 실려갔다. AMS는 무게가 6.7t에 이를 정도로 큰 장치다.

연구를 주도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새뮤얼 팅 교수 연구팀은 그러나 “암흑물질의 정체를 확실히 확인하는 데 몇 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 연구진의 연구결과는 지난해 3월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게재됐다.


<양양 | 목정민 기자 mok@kyunghyang.com>

경향신문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date=20140301&rankingSectionId=105&rankingType=popular_day&rankingSeq=1&oid=032&aid=0002447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