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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에 독이 된 영등포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사업
“이쪽이랑 저쪽은 달라. 저쪽에서 살려면 5만원은 더 줘야 해.”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 골목. 주민 김모(78·여)씨는 쪽방건물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김씨가 가리킨 ‘저쪽’에는 새로 설치한 나무 출입문과 산뜻한 샌드위치 패널 지붕이 늘어서 있었다. 반대편 ‘이쪽’은 옛 모습 그대로 낡고 지저분한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김씨는 “원래 이 골목 월세는 다 같았는데 리모델링 이후 저쪽이 더 비싸졌다”고 귀띔했다.
쪽방촌 영세민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서울시가 추진한 ‘쪽방촌 리모델링 사업’이 건물주와 집주인들에 의해 악용되고 있다. 5년간 월세를 동결한다는 약속을 받고 시 재정을 들여 리모델링해줬는데, 당국의 월세 모니터링이 소홀한 틈을 타 몰래 월세를 올리고 있다. 리모델링 후 오른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해 방을 비우고 쫓겨나는 상황까지 속출하고 있다.
주민 최모(42)씨는 “리모델링하면 뭐하나. 결국 집주인들만 신났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처음부터 월세를 안 올리는 조건으로 서울시가 공사를 해준 것 아니냐”면서 “월 3만∼5만원은 기본이고 많게는 10만원 가까이 오른 곳도 있다”고 말했다. 강모(45)씨도 “70대 노인은 지난해까지 월세 18만원을 내다 공사 후 23만원으로 올라 생계를 잇기 어려워졌고, 어떤 집은 무려 8만원이 올라 세입자가 방을 빼고 나갔다”고 말했다.
쪽방촌은 서울 빈곤층의 주거 공간이다. 보증금 없이 20만원 안팎의 월세만 내면 방을 얻을 수 있다. 주민은 대부분 홀로 지내는 일용직 노동자,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노인, 장애인이다. 재활에 성공한 노숙인이 들어오기도 한다. 대다수가 월수입 50만원을 넘지 못해 수입의 절반 가까이를 쪽방 월세로 지출한다. 월세가 조금만 올라도 이들에겐 큰 타격이다.
이를 감안해 서울시는 2012년부터 총 441가구에 대한 리모델링에 착수하며 집주인 등과 협약을 맺고 사업 이후 5년간 월세를 동결키로 약정했다. 만약 월세를 인상할 경우 리모델링 비용을 집주인이 모두 부담토록 했다. 이런 약정을 무시하고 슬그머니 월세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세입자들은 하소연도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나마 이 정도 가격에 방을 구할 곳이 많지 않다보니 집주인 눈치를 살펴야해서다.
박모(76)씨는 “집주인들이 어디 알리지 않고 슬그머니 월세를 올리는 데다 항의라도 했다간 ‘싫으면 나가라’고 할까봐 어찌 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리모델링한 쪽방에 거주하는 50대 여성은 “방값이 오르긴 올랐다”면서도 “월세에 관해선 더 이상 묻지 말아 달라”고 손사래를 쳤다.
사전에 사업 계획을 알아낸 집주인이 사업 직전 기습적으로 월세를 올린 정황도 포착됐다. 쪽방 집주인 이모(49)씨는 “사업 발표 2개월 전 일부 집주인이 월세를 5만원씩 한꺼번에 올려받았다”며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이상하게 여겼는데 이후 서울시 계획이 발표됐다. 집주인이 미리 알아채고 올린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국민일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05&aid=0000637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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