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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체불임금 소송 이겨도 돈 못 받는 근로자 수두룩(뉴스1)

체불 총액 매년 증가…"노동당국 소극적 단속·솜방망이 처벌이 원인"

 

2일 새벽 서울 남구로역 인력시장이 일자리를 찾는 건설노동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뉴스1 © News1

공연기획사에 다니던 A씨는 5개월치 임금 800여만원이 밀리자 같은 처지에 놓인 동료직원 12명과 함께 회사 대표를 상대로 형사소송을 걸었다. 약식재판으로 진행된 소송 결과 사업주에게 벌금 200만원이 내려졌지만 체불 임금은 받지 못했다.

A씨는 기어이 체불임금을 받겠다는 일념으로 동료들과 민사소송 절차를 밟았다. 법원의 지급명령 결정이 내려진 후 사업주의 부동산·예금 등이 가압류됐으나 회사 대표는 지급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형편이 좋아지면 돈을 주겠다는 대표를 믿고 기다려온 1년여 시간의 끝은 배신감 뿐이다.

"형사소송, 민사소송을 해봤자 사업주가 줄 돈이 없다는데 소송을 하나마나였죠. 형사에선 체불임금의 고작 2%에 불과한 벌금이, 민사에선 회사 부도내고 돈 없다고 '배 째라'식으로 나오니 어쩌겠어요"

A씨는 최근 주변 사람들로부터 회사대표가 이미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재산을 타인 명의로 돌려놓고 버젓이 수입차까지 몰고 다닌다는 얘길 들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 속에 정부가 지원하는 체당금이라도 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고의부도로 판명날 가능성이 높아 마음은 쓰라리기만 하다.

얼마 전 식품제조업체에서 일하던 B씨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밀린 월급 1000여만원을 받지 못하자 법률구조공단을 통해 진행한 민사소송에서 승소했지만 회사 대표가 법인재산을 다 빼돌리고 개인재산마저 타인 명의로 돌려놨기 때문에 체불임금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1년 남짓 체불임금 받으려고 수차례 노동청과 법률구조공단, 법원에 다녔지만 허사에요. 정부는 내 월급을 갖고 중간에서 벌금만 받아가고, 저는 목숨줄 같은 월급 한 푼도 못 받고…. 정말 힘없는 노동자가 설 곳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B씨의 하소연은 수많은 체불임금 근로자들이 처한 현실을 대변한다. 올해 7월 기준 전국의 체불 근로자는 16만명, 체불 임금은 7827억원이다. 1인당 평균 금액은 500여만원으로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이다.

연도별 체불임금 발생 현황. © News1 2014.08.24/뉴스1 © News1

정부가 매년 명절 때만 되면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지만 달라지는 것은 매해 느는 체불 총액이다. 지난 2011년 1조874억원이던 체불액이 2012년에는 1조1772억원으로 늘더니 지난해 1조1930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이보다 더 늘 전망이라는 게 노동당국의 말이다.

추석명절을 앞둔 체불 근로자는 고통스럽기만 하다. 신고를 하고 소송에서 이겨도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하니 하소연 할 데도 마땅치 않다. 노동당국의 소극적인 지도단속과 솜방망이 처벌을 개선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는 게 노동계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근로기준법 제109조에 따르면 임금체불한 사업주에게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사회적 문제가 아닌 이상 대부분 100~500만원 정도의 벌금형이 내려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매년 체불임금으로 징역형 처벌을 받는 사업주는 10명 안팎에 불과하다.

박영기 전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은 "근로자들의 노동문제를 상담하다 보면 신고, 소송을 하고도 밀린 임금을 못 받는 사례가 수두룩하다"며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대부분 소액의 벌금형에 그치고 신용에 대한 제재가 없어 책임이나 죄의식 부족 등으로 벌어지는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사회적 분위기가 체불 사업주에 대한 처벌보다는 두둔하는 일 잦다는 게 노동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일부에선 차라리 이럴 바에는 밀린 임금을 정부가 대신 책임질 수 있도록 국가보험제도를 도입하는 게 실효 있는 대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매해 임금체불이 늘어나는 것은 악질적으로 고의·상습을 일삼는 악덕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치기 때문"이라며 "단순 명단공개와 신용제재를 넘는 강력한 처벌조항과 법 집행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많은 노동자들이 속병을 앓으면서 멀고 먼 체불임금 받아내기 터널을 지나고 있다. 사업주의 편의를 봐주는 사회적 인식을 걷어내고 보다 강력한 처벌규정을 마련·적용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jepoo@

뉴스1 http://news1.kr/articles/?1849174